본문 바로가기
이슈 : Issue

● 앨빈 토플러 사망… 업적은?

by 미닝. 2016. 6. 30.
반응형

 

 

최근에 유명인들의 사망소식만 들린다.. 김성민.. 오세종.. 앨빈 토플러..

 

아직 사망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로스앤젤로스의 본인 저택에서 현지시간 6월 27일에 별세했다고 한다.

향년 87세인 이 분의 나이를 가늠해봤을 때, 아마도 자연사가 아니었을까. 사망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망 소식이 3일 늦은 뒤에나 발표됐다. 토플러가 부인과 함꼐 설립한 컨설팅 회사 '토플러 어소시에이츠'에서 공식적으로 오늘 발표 소식을 전달했다고 한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신중하게 발표를 조금 늦춘 것 같다. 사망 원인은 따로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앨빈 토플러 관련된 스토리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이라는 책에서 소련의 붕괴를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한다.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아침마다 세계 7종의 신문을 샅샅이 읽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 잉크에 손톱이 까매질 정도로 신문을 읽었다."

 

뉴욕대, 마이애미대, 코넬대 등 5개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에는 서강대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과거 한국의 교육 문제점과 한국 학생들의 상황을 꼬집은 적이 있다. 위의 사진이 그것이다.

 

과거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전망한 적이 있다. 2001년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위기를 넘어서: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미래학자는 어떤 직업일까?

 

 미래학자는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내다보는 사람들이다. 유명한 세계 3대 미래학자들 중에는 다니엘 벨, 존 나이스비트, 그리고 앨빈 토플러가 최고로 뽑힌다.

 

'미래학'이라는 단어는 과거 1842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처음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미래학이라는 단어의 뜻이 모호하고 확실히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현재에 와서 많은 학자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연구하면서 미래학의 토대를 만들었고, 1966년에 앨빈 토플러가 대학에서 처음으로 미래학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소위 미래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직업이 다양하다. 경영자, 기술자, 신문기자 등등 다양하지만, 현재 산업의 흐름과 문화적 경향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 직업은 그리 상관없다. 앨빈 토플러도 과거에 뉴욕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다. 졸업하고는 5년 간 용접공으로 일하기도 하고,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점 떄문에 미래학자들이 비판 받기도 한다. 흔히들 "팔방미인은 어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없다(Well-rounded person, jack-of-trades)"고 한다. 미래학자들은 여러가지 실용적인 지식들과 경험에 근거하여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들이 탄탄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토플러의 이력

 

 

앨빈 토플러는 자식이 없고 아내 하이디가 유일한 가족이며 60년 간 함께 했다.

 

둘은 뉴욕대 재학 중에 만났는데, 당시 앨빈은 영어를 전공하고 있었고 하이디는 언어학을 전공하고 있었다고 한다. 둘은 서로 생각이 맞았다고 한다. 마치 예일대 재학 시절에 만난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 부부처럼.

 

둘은 주로 사회 노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토플러는 1950년에 대학 생활을 중단하고 클리블랜드로 가서 알루미늄 공장의 용접공으로 5년 간 일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간사로도 활동하면서 토플러는 공장 노동자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때 노조의 후원을 받는 신문사에서 일을 하면서 여러 뛰어난 칼럼들을 내놓았다.

 

아내 하이디도 앨빈과 함께 노동조합 직원으로 활동했다.

 

그 덕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널인 '데일리'지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미국 의회와 백악관 출입 허가를 받고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경제 잡지 포천(Fortune)에서 경제기자로, '미래'지에서 부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빌 게이츠, 피터 드러커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지도자 3위"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며,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라고 말했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쇼크, 권력이동, 전쟁 반전쟁, 부의 미래, 제 3의 물결 등을 쓰면서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제 3의 물결

 

 

 앨빈 토플러는 10권의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를 썼다.

 

'제 3의 물결', '권력이동', '미래의 충격' 등 당시 베스트셀러 였고, 현재까지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특히 제 3의 물결은 현재 우리 지구촌 사회의 모습들을 대부분 예측하였기 때문에 걸작으로 뽑힌다. 이 책에서 앨빈 토플러는 처음으로 재택근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디지털 혁명, 통신 혁며으 기술적 특이성들에 대해 여러 저작을 냈다.

 

앨빈 토플러는 제 1의 물결을 농업 혁명, 제 2의 물결을 산업 혁명, 제 3의 물결은 정보화 혁명으로 과거 농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앞으로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고, 정보화혁명은 20~30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니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반응형

댓글